제 손은 자유롭게 움직여주지 않습니다.
남들이 연필을 쥐고 종이 위를 달릴 때,
머릿속에 보이지 않는 원고지를 펼쳐야만 했습니다.
수학이 전공인 제게 시는 ‘쓴다’는 표현보다
‘푼다’는 말이 더 어울립니다. 삶의 답을 찾아가는 고독한 연산과도 같았습니다
제 머릿속에만 갇혀 있던 이 답들이 저의 유일한 독자인 지원사님의 손을 빌려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달리지 못한 운동화처럼 신발장 깊숙이 갇혀있던 제게 시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이면을 더 깊게 들여다보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이제 저는 소리로 걷지 않고 시로 걷는 시간으로
나아갑니다
밤새 발치에 누운 그림자들에게 눈꺼풀을 녹여 이불을 덮어주는 가로등처럼 아픈이들의 마음을 가만히 비추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