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물론 무지개색도 모르는 금순 할머니다.
무채색 그녀의 꿈 이야기는 수억 광년 떨어진
어느 외계인의 말처럼 들리곤 한다.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인 그녀는
어머니의 모습도 아버지의 모습도 전혀 모른다.
농축된 음성만이 뇌세포 깊은 곳에 보석처럼 간직되어 있다.
고도로 발달한 음성 인식 시스템은 가끔
지난날을 실처럼 풀어 놓을 때면 듣는 이부터 눈물겹다.
씨받이로 팔려 온 그녀의 일생은
너울 한 번 써보지 못한 울타리 안이다.
낭자머리로 3남매 낳아 젖 물려 키울 때
인심 좋은 그녀는 초승달에도 젖 물려 보름달로 키웠다.
환하게 자란 달은 아픈 어깨를 주물렀고
새벽마다 달을 개어 윗목에 두고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자식들 모두 출가시킨 후 외로워진 그녀는
무너진 울타리 안에 장만한 걀찍한 터앝에
별빛 같은 손자들 돌 보듯이 채소를 키웠다.
눈 밝은 손으로 더듬으며 풀도 뽑고 얄미운 벌레도 잡는다.
무더운 여름에는 먼지 쌓인 마루에 걸터앉아
찢어진 몸빼바지도 꿰매고 저고리도 꿰맸다.
신선한 가을바람이 그녀의 마당에 찾아 들면
속이 가득 찬 배추 뽑아 이웃들에게 한 포기씩 나눠 줬다.
살갗은 세월 겨워 주름지고 퇴색했지만,
마음만은 굄돌 같은 아리따운 소녀 천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