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질 소리가 사각거린다. 젖은 머리카락이 툭툭 어깨 위로, 바닥으로 떨어진다. 미용실 의자에 앉은 나는 거울을 보지 않는다. 정확히는 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거울 속 내 모습보다 더 선명하게 변화를 감각한다.
디자이너의 가위가 귀 밑을 스칠 때의 서늘함, 분무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세한 물방울,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의 온도. 시각은 종종 상상력을 제한한다.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믿게 하니까. 하지만 어둠 속에 있는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머리가 짧아지면 나는 더 가벼운 사람이 된다. 단발의 끝이 찰랑거릴 때 나는 들판을 달리는 상상을 한다. 펌을 하여 머리카락이 구불거릴 때 나는 파도를 떠올린다. 타인의 시선, 거울에 비친 객관적 외모, 유행이라는 강박. 그 모든 시각적 감옥에서 나는 비켜나 있다.
"마음에 드세요?" 디자이너가 묻는다. 나는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만져본다. 부드럽고 가볍다. 그거면 충분하다. 나는 남에게 보이기 위해 머리를 자르는 것이 아니다. 내 손끝에 닿는 내가 달라지는 것.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나 스스로 나를 규정하는 것. 거울 없는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