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목욕탕에는 특유의 울림이 있다. 타일에 부딪히는 물소리, 바가지가 바닥을 긁는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가 뒤섞여 거대한 웅성거림을 만든다고들 한다. 하지만 내게 이곳은 진공의 공간이다. 보청기를 라커룸에 두고 들어오는 순간, 세상의 소음은 차단된다. 대신 감각은 피부 전체로 확장된다.
탕 속에 몸을 담근다. 따뜻한 물이 어깨를 감싼다. 맞은편 탕에 덩치 큰 사내가 풍덩 뛰어든다. 수면이 출렁이며 내 가슴팍으로 물결이 밀려온다. 나는 귀가 아닌 쇄골로 그가 왔음을 느낀다. 옆자리의 노인이 내 등을 밀어주겠다며 손짓을 한다. 나는 가볍게 목례하고 등을 맡긴다.
바깥세상에서 나는 늘 긴장해야 했다. 입 모양을 읽어야 했고, 발음이 어눌하지 않은지 신경 써야 했으며, 되묻는 일을 미안해해야 했다. 소통은 투쟁이었다. 하지만 벌거벗은 이곳에서 우리는 말이 필요 없다. 그저 뜨거운 물을 끼얹어주고, 비누를 건네고, 등을 밀어주면 그만이다.
물의 진동이 내 몸을 통과한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오해받을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침묵. 그것이 내가 아는 가장 명징한 자유다. 습기 찬 공기 속에서 나는 눈을 감는다. 고요하다. 비로소 시끄러운 세상으로부터 해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