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서울 플라자 호텔에서 처음 만났던 때부터 당신의 아름다움과 소박한 성격에 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렸소. 우리는 돈암동 성당에서 친지와 친구를 모시고 소개받은
지 석 달 만에 백년가약을 맺었소. 신혼의 달콤함에 푹 빠져 살다보니 주일날 성당에
미사참례도 안하고 마포구 대현동 환일 고등학교 앞 전세방에서 오붓한 시간을 즐겼소.
세상 즐거움에 빠져 결국 나는 1982년 3월 25일 큰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소.
아들은 백일을 갓 지났고 당신은 청상이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외로움 에 얼마나
괴로웠을 지 내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았소. 나는 당신과 어머니와 동생들의 기도와
정성으로 사고 후 23일 만에 의식을 회복했고 34일 만에 한 쪽 눈을 떴고 50일 만에 입술을
열었소. 결국 한쪽 눈은 눈꺼풀이 내려앉아 뜰 수가 없게 되었지만 그것도 감사였소, 이렇게
주님의 은총으로 남편인 내가 죽음에서 깨어났지만 이십대 젊은 여자의 몸으로 가정을
이끌어 가는 것은 당신에게 혹독한 시련이었을 것이오.
나의 짜증과 신경질과 화내는 것을 참지 못하고 나를 떠날 법도 했는데 당신은 참
고맙게도 잘 참아주었소. 어머니와 시동생과 시누이가 따뜻한 위로와 도움을 주었다 해도
그것 역시 짐이었을 것이오. 당신의 손길이 더욱 필요한 나지만 당신은 나를 챙기는 것보다
해야 할 일들이 더 많았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