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내 이름을 울예라고 불렀다. 내가 다섯 살 때 1·4후퇴 피난 시절이었는데 워낙
많이 울어서 울예라고 이름을 지었다. 나는 1959년 시골 초등학교에서 6학년을 마치고
서울로 진학을 했다. 시골집에는 남동생과 언니 엄마 이렇게 세 식구가 남았는데 그 후
초등학교 3학년 남동생까지 서울로 전학을 했다. 그때 영등포에 오빠가 살고 계셨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동생들 교육 때문에 데려간
것이다. 울예는 동생과 주말에 엄마한테 왔다 월요일 새벽 첫차로 올라가곤 했다 서울 사는
오빠도 올해 첫째가 일학년에 입학했다. 운수업에 종사하는 오빠는 올케와 시골 부모님들
뜻으로 맺어진 부부다. 품앗이 일꾼들과 동네 말꾼들이 방안 가득 모였다. 아버지가 안 계셔 저녁이면 석유
등잔불 밑에 고전 읽어주는 사촌 오빠가 날마다 오셨다. 결혼하지 않았는데 서당에 다녀
한문책을 잘 읽었다. 말꾼들은 몸이 고단해도 졸음을 참으며 매일 모였다. 오늘은 또 어떤
책을 읽을까? 사람들은 콩쥐팥쥐 임꺽정 장화와 홍련 삼국지, 돌아가며 읽는 이야기에
빠졌고 학생 울예와 동생은 말꾼들에게 밀려 윗목에서 배 깔고 공부를 했다. 시골은 농번기 때라 날마다 바쁘다 오늘도 말꾼들이 잔뜩이다. 동네 어귀에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밤중에 울예가 나타났다. 아침에 서울 올라간 딸을 보고 놀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