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친 오후, 창가에 걸린 낡은 시계는 여전히 멈춰 있었다.
분침은 어딘가로 떠난 사람을 기다리듯, 같은 자리를 맴돌 뿐이었다.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멈춘 건 시계인지, 아니면 나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날도 이런 날씨였다.
햇빛이 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스며들던, 조금은 쓸쓸한 오후.
우린 아무 말 없이 길을 걸었다.
서로의 그림자가 겹쳤다가, 이내 조금씩 멀어졌다.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조급했을까.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면 충분했을 텐데,
나는 끝내 그 말을 하지 못했다.
시간은 그렇게 우리를 지나쳐 갔다.
다시 만나면 웃으며 인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속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
사진 속의 얼굴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 미소를 바라보는 내 눈빛은 점점 낯설어졌다.
오늘, 우연히 그날의 음악이 들려왔다.
익숙한 멜로디 사이로, 흐릿한 기억이 밀려왔다.
비 냄새, 웃음소리, 그리고 마지막 인사.
모든 것이 마치 꿈처럼 희미해졌지만,
그 속에서 나는 여전히 그날의 나를 만난다.
늦어진 시간 속에서도,
당신의 이름은 아직 내 안에서 울린다.
이젠 잡을 수 없는 손이지만,
그 따스함은 여전히 내 기억의 끝에서
조용히 나를 붙잡는다.
창밖으로 저무는 빛을 바라본다.
다시 흘러가기 시작한 시계 초침이
내게 속삭이는 듯하다.
“잊지 않아도 괜찮아. 다만, 살아가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