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다로 미끄러지던 저녁, 해온은 갯돌 사이에 귀를 대고 파도 소리를 들었다. 물결은 숨처럼 들이쉬고 내쉬며, 오래된 이야기를 중얼거렸다. 그는 그 속삭임을 따라 의미를 붙잡으려 했지만, 말은 곧 물거품이 되어 흩어졌다. 어린 시절부터 해온은 바다를 두려워했다. 그의 아버지가 떠난 날도, 이렇게 노을이 해변을 붉혔다고 어머니는 종종 말했다. 해온은 어머니의 말끝에서 늘 어딘가 미완의 쉼표를 보았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작은 생선가게를 꾸렸다. 파도와 마찬가지로 장터의 소리는 오르락내리락 했다. 가격을 두고 흥정하는 이들의 목소리, 풍경처럼 지나가는 관광객의 웃음 섞인 말, 그리고 얼음이 녹아 바닥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해온은 그 모든 소리를 모아 머릿속에서 다시 정리하곤 했다. 소음 속에서 질서를 발견하는 것은 그의 특기였고, 그 질서가 그를 어느 정도 안심시켰다.
마을엔 바다와 관련된 전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검은 등대' 이야기는 유난히 음울했다. 안개가 짙게 깔린 밤마다, 보이지 않는 등대가 보이지 않는 불빛으로 길을 잃은 배들을 부른다는 전설이었다. 그 불빛을 따라간 배는 더이상 돌아오지 못했다. 사람들은 경고처럼 그 이야기를 나눴으나, 언제나 끝은 흐릿했다. 누군가 실제로 보았는가 하면, 누군가는 모두 꾸며낸 이야기라 했다.
해온은 전설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믿지 않는다고 해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두려움은 이유보다 먼저 찾아왔다. 파도가 유난히 높은 날이면 그는 가슴 한복판이 ...